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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로 유입되는 사람들 중 코이카를 검색하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특히 코이카 영프로페셔널 관련된 검색어가 많다.

코이카 해외사무소/재외공관 영프로페셔널은 해외에서 근무한다는 점 때문에 관심이 몰리는 것 같다.

개발도상국들이지만, 의외로 괜찮은 나라도 많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 지원자가 많은데, 실제로 면접장에 갔을때 여성이 남성지원자보다 월등히 많았다.

아무래도 해외에 관한 관심도가 여성들이 더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프로페셔널은 해외사무소 및 재외공관이기에 다른 영프로페셔널과 달리 국가기관이라 더 인기가 많다.

아무래도 국내 영프로페셔널은 대부분 봉사단체나 학내 연구소, 산학협력팀 등인데 반해 해외사무소, 재외공관은 코이카 현지사무소나 대사관 영사관 등에서 인턴을 하게된다. 자연스레 관련국가에 대한 경험이나 정보도 더 많이 얻을 수 있으며, 해외에 거주할 수 있어 관련 언어 습득 등 큰 이점이 있다.


관련 검색어 중 의외로 많은게 바로 신체검사이다. 

코이카 영프로페셔널은 서류 -> 면접 -> 신검 -> 교육 -> 파견 순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생각보다 신체검사가 중요하다.

신체검사에서 탈락하는 경우 교육을 받을 수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교육 평가에서도 탈락할 수 있다)

그리고 의외로 신체검사에서 탈락하거나 재검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신체검사는 전국 KMI 한국의학연구소에서 진행되며, 검사 비용은 무료이다.

해외 파견이기에 검사항목이 꽤나 꼼꼼하다.


간기능

간염

지순질환대기사계

당대사

신장기능

췌장기능

통풍, 관절

감염성

철대사

갑상선 기능

종양표지자

혈액질환

소변검사

추가검사

기초검사(신장/체중/BMI지수/혈압)

안과검사

청력검사

흉부방사선검사

복부초음파검사

요추촬영


위와 같은 항목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세부항목이 많지만 이건 생략하였다.

일반채용검진을 해봤다면 알겠지만, 일반채용검진과 다르게 상당히 꼼꼼하게 검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채용검진의 경우 혈액, 소변, 혈압, 신장, 체중,안과 정도로 끝이다)


나 같은 경우에도 당시엔 써놓지 않았지만, 항목 중 하나가 재검이 필요하다고 나왔었고, 당시 합격자 단톡방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재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와 관련하여 담당자와 통화했었는데,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 보통 의료시설이 열악한 개발도상국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다른 공공기관보다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 지속적인 치료나 약을 복용해야 하는 경우 신체검사 불합격 요인이 된다.

- 비만이나 저체중의 경우에도 신체검사 불합격 요인이 될 수 있다.


즉 의료체계가 좋지 않은 국가로 파견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경우에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면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파견을 취소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코이카 영프로페셔널 해외사무소/재외공관에 지원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건강관리에 유념하셔야 할 것 같다.

또한 비만이나 과체중인 분들은 건강에 문제가 없더라도, 체중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 


P.s 1

개인적으론 자격증과 다른 기회를 위해 재검을 받지 않고 포기했지만, 신체검사도 문제가 됐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한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어느정도 건강관리가 필요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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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에서도 썼는데, 우즈베키스탄과 우크라이나는 흔히 장모님의 나라, 미녀들의 나라, 김태희가 밭을 가는 나라라 불린다. 

그런데 우즈베키스탄과 우크라이나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두 국가의 이름이 비슷한 것도 아니고... 고작 한 글자만 공유하는데도 불구하고 많이들 헷갈려한다.

공통점이라면 두 국가 모두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라는 것 정도이다.


두 국가 모두 제정러시아 시대에 편입되었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동부는 요청에 따라, 우즈벡은 침공을 통해 편입시켰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경우 초기에는 러시아 제국을 환영했다. 몽골제국과 함께 서방원정을 왔던 타타르 족의 국가인 크림칸국이 크림 반도에 위치하여 있었으며, 우크라이나는 이들에게 지배받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문제가 됐던 것든 그리스 정교(현 러시아 정교)를 믿는 우크라이나인들을 박해했던 것이다. 

이슬람으로 개종하거나 이슬람이 아닌 경우 가혹한 지배가 이어졌기에 그들에게 있어 같은 종교를 믿으며 민족이나 언어적으로도 가까운 러시아가 더 낫게 보였을 것이다.


그에 반해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는 여러개의 칸국으로 나뉘어져 각기 통치를 받고 있었으며, 1800년대 중후반 러시아제국이 순서대로 칸국을 복속시켰다. 쉽게 지배를 받기도 하고, 결사항전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모든 중앙아시아가 러시아 제국에 복속됐다.

중앙아시아의 칸들은 러시아에 지배를 받은 이후 러시아 귀족에 봉해져 지역관리자로 잘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국교는 아니지만 국민 대부분이 이슬람 교를 믿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민족이나 언어적인 유사성을 갖는다. 많은 단어들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로인해 우크라이나어를 러시아의 방언으로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실제론 러시아어와 다른점도 많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러시아는 6개의 격인데 반해 우크라이나는 7격이다.

같은 슬라브계언어로써 일부 공통점을 갖는 것이지 방언으로만 보는 것은 잘못된 시선이다. 


우즈베키스탄은 러시아와 민족이나 언어적인 유사성이 전혀 없다. 우즈벡인은 투르크계 민족이며, 언어 역시 투르크어계이다.

비슷하다면 차라리 한국어가 투르크어와 비슷할 것이다. 

여튼 두 국가는 이렇게 역사적으로도 인종적으로도 큰 연관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한다.











우선 우즈베키스탄이 장모님의 나라라 불리게 된 것은 몇년전 유행했던 예능인 '미녀들의 수다' 때문이다.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우즈베키스탄 출신 미녀들이 한국 사람들에게 상당히 예뻣기 때문이다.

자밀라와 구잘인데, 둘다 우즈벡에선 예쁜 외모가 아니라며 겸손을 떨었는데 그걸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믿었다는게 문제. 

특히 구잘 같은 경우,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는 등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보면 알겠지만, 둘다 전형적인 서양인의 외모는 아니다. 그렇다고 동양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둘 다 어느정도 투르크계, 터키쪽 외모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우즈베키스탄하면 전형적인 서양미녀, 러시아미녀를 생각한다. 우크라이나와 착각하기 때문.









바로 이런 분들이 사람들을 혼동하게 만드는 분들이다. 누가봐도 서양인인데 우즈베키스탄에 돌아간다하니, 우즈벡은 서구적이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위의 분은 러시아계이다. 우즈베키스탄이 러시아계가 많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 러시아계는 약 10%정도이며 대부분 수도 타슈켄트에 거주한다.

이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이름이다. 에브게냐는 슬라브계 이름이며, 구잘이나 자밀라는 우즈벡계의 이름이다.


우즈벡에서 교환학생을 했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여자들 예쁘지 않냐며, 김태희가 밭을 간다느니 하는 소리를 한다.

결론부터 말하지만 아니다. 실제 타슈켄트에 1년 거주했지만, 저 정도로 예쁜분은 많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은 다민족 국가로 약 120개의 민족이 섞여 살고 있다. 

때문에 의외로 몽골계인 사람도 많아서 미녀의 나라를 기대하고 간다면 실망할 것이다.

또한 미녀들도 보통 터키쪽 외모이다 보니 호불호가 갈리는 편.










우크라이나에 가보진 않아서, 인터넷 검색사진으로 대체. 

보면 알겠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서양 미녀의 전형적인 외모이다.

우크라이나나 벨라루스에서 살다오거나 다녀온 지인들의 말을 빌면 저런 외모가 꽤 많다고 한다. 흔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것은 사실이라 한다.


즉 장모님의 나라, 미녀들의 나라는 우크라이나.

물론 우즈벡에 미녀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서구적인 미녀는 우크라이나이다.


이외에도 슬라브계 국가들은 미녀가 많기로 유명한데, 폴란드나 불가리아도 외모가 상당히 출중하다고 한다.

미녀가 많든 적든 말이 통해야 하니 미녀를 만나고 싶다면 그 나라 언어라도 배워보는게 어떨까 싶다.



P.s 1

생각보다 많이들 헷갈려해서 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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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은 약 1년여간 살았지만, 사실 그때는 사진을 자주 찍지도 않았고, 너무 허무하게 지나갔다.

지금도 가끔은 후회하는 부분이다. 좀 더 활동적으로 이곳저곳 돌아다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우즈베키스탄하면 미녀의 나라를 떠올리곤 한다. 한때 유행했던 미녀들의 수다에서 우즈벡 출신 미녀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거기서 "저는 우즈벡에서 평범한 편이에요"라는 예의를 차린 말을 했는데 사람들은 그걸 그대로 믿어버렸고, 장모님의 나라로 불리게 된다. 

재밌는 점은 일반 사람들은 우즈벡과 우크라이나를 잘 구별 못한다는 점이다. 진짜 장모님의 나라는 우크라이나가 아닐까 싶다. 


우즈베키스탄이 위치한 중앙아시아는 실크로드 무역의 중심에 있었으며, 세계사에 몇가지 자취를 남기기도 했다.

종이를 제작 기법을 탈취한 탈라스전투와 티무르제국의 아무르 티무르, 무굴제국의 바부르 아닐까 싶다. 

재밌는 점은 아무르 티무르나, 바부르는 우즈벡인이 아니라고 한다. 

게다가 바부르는 우즈벡인의 침공에 자신의 국가인 페르가나왕국을 버리고 아프간 쪽으로 도망간 것이다.

그런데 우즈벡인들은 우즈벡 역사로 생각하며, 칭송한다니 아이러니. 


위 사진에 나온 것이 절름발이 티무르. 

우즈벡 전국에 3개의 아무르 티무르 동상이 있는데 타슈켄트는 말에 앉아 있고, 남은 두개는 앉아있는 것과 서있는 것이라 한다.

하나는 아프간 근처에 위치한 도시 카르시에 있고 나머지가 하나는 친구가 말해줬는데 잊어버렸다.









내가 교환학생을 갔을 때만해도 가장 큰 화폐단위가 1,000숨이었다. 

게다가 화폐가치가 그렇게 높지 않아서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기본 2~3만숨씩 나왔다. 

일일히 세서 돈을 지불해야 됐기에 외출할때면 꼭 저렇게 100장짜리 한묶음씩 가지고 나가야 했다. 


지금은 5,000숨도 생겼다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동안 물가도 올랐다니 큰 의미는 없는 듯.

그래서인지 우즈벡 정부는 현금보다 카드를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월급의 절반을 카드로 사용해야 하며, 출금이 안된다고 한다.

이로 인해 현금만 받던 일반적인 시장이 몰락하고 대형 마트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우즈벡은 고정환율 제도를 포기했다만 내가 갔을땐 고정환율 제도였다.

국가가 매주 환율을 결정하고, 그 가격에만 사고팔아야 했던 것. 하지만 그 가치 평가가 터무니없이 낮아 외화 암거래상이 존재했다. 

당시 국가가 정한 1달러 당 환율은 1900숨 내외 하지만 실제 시장거래 환율은 2500~3000숨 사이였기에 100달러를 바꿀경우 꽤 많은 손해를 봤다.

그래서 보통 암거래상과 달러를 교환했다. 물론 걸리면 돈을 압수당하고 심한경우 추방까지 당할 수 있다만 실제로 추방 당한 사례는 본적은 없다. 


초기엔 어디서 환전할지도 모르고, 외국인이라 환전가치를 낮게 줘서 한국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환전까지 같이 한 경우도 많았다.

한국 식당 사장에게 환전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 당시 환율을 말해주고 내가 하고 싶다 말하면 암거래상을 불러주었다...!!














타슈켄트는 그렇게 볼게 많은 도시는 아니다. 1960년대 대지진으로 도시의 60% 이상이 파괴되었으며, 이후 소련에 의해 복원된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묘하게 러시아식 건물도 많고 우즈벡 건물답지 않게 특이하게 생긴건물도 종종 보인다.


첫번째 사진은 초르수 바자르라는 우즈벡 전통 시장이다. 특이한 점은 시장에 있는 저 돔이다. 

저 돔 안에는 각종 향신료를 파는 상인들이 모여있고 이로인해, 내부에 들어가면 향신료 냄새가 진동한다.

타슈켄트에서 제법 규모있는 시장으로, 시장 관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꼭 가보는 것 같다.

시장에 가면 유모차에 가득 빵을 싣고 나와 빵을 판매하는 상인들도 있고, 전통 인형이나 그릇 등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인들도 있다.

작은 토기 인형 같은 기념품은 저렴한 편이라 구매할 만 하다.

우즈벡 시장은 여느 전통시장처럼 깎는게 가능하니 말이 안통해도 가격 깎는게 가능하다면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


중간 사진은 초르수바자르 근처에 있는 이슬람 사원이다. 지진 이후 새로 지었다는 듯 싶다. 초르수 바자르를 구경하는 겸 같이 둘러봐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초르수에서 멀지 않은 곳에 더 큰 이슬람 사원이 존재하고, 거기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코란을 보관하는 곳이 있다.

아무르 티무르가 전쟁 때 약탈하여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다섯번째 사진은 나보이 극장이다. 지진 이전 부터 있던 건물로, 세계2차 대전때 데려온 일본 포로들을 사용해서 지었다고 전해진다. 

대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고 견뎌, 일본의 기술력에 감탄 했단 말이 있다. 


밑의 사진은 우즈벡 법대 건물이다. 꽤나 고풍스러운 느낌의 건물인데, 러시아가 지어서 사용했지 않을까 싶다.

비슷한 건물로 웨스트민스터 대학(영국대학)의 분교와 모스크바대학의 분교 역시 저런식이다. 
















우즈벡의 거리 풍경을 보면 높은 건물이 별로 없다. 지진지대다 보니 높은 건물을 많이 지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부관련된 큰 건물들을 제외하면 보통 낮다. 아파트도 10층 내외로 높은 경우가 없다. 

그리고 역시 소련 특유의 나무에 흰칠하는건 여전하다. 저게 병충해를 방지해 준다는데 좀... ㅋㅋㅋ 보기엔 묘하다. 


우즈벡의 날씨는 무척이나 덥다. 여름엔 40~45도까지도 올라가기 때문에 햇볕에 노출되면 피부가 금방 타기 쉽상이다.

하지만 우즈벡은 매우 건조한 기후여서 한국처럼 찜통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늘에 서있으면 바람이 불어 그나마 낫다.

쾌청한 하늘이 우즈벡 여름의 특징이라면 특징. 사진을 찍으면 예쁘게 나온다.

미세먼지에 찌들어 있는 한국을 생각하면 정말 좋다. 


처음 우즈벡에 갔을때 지하에 있는 화장실에 조금 충격받았다.

돈내고 사용하는거야 중국에서 이미 경험해 봤는데 세번째 사진처럼 저렇게 지하에 만들어진 화장실이 있었다.

게다가 내부가 생각보다 상당히 커서 놀라웠다. 대변기만 약 10칸 정도 규모였다.


우즈벡인들은 보통 아파트보다 다섯번째 사진과 같은 집에 살길 원한다. 

한국인들은 땅집이라 불렀는데, 저게 나름 부의 상징이기도 하다.

내가 우즈벡에 갔을때 저런 집을 유럽식으로 개조하는게 유행이었다. 2~3층 규모에 높은 담을 쳐서 짓는 방식이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 아니지만 유럽느낌을 위해 뾰족한 지붕을 올리더라. 


우즈벡은 과일이 상당히 맛있는 나라다. 풍부한 일조량 덕분이다.

그래서 우즈벡 과일은 다른 나라로 수출도 많이된다. 한국에선 우즈벡 체리가 종종 수입되곤 한다.

과일이 워낙 많이 생산되다보니 마지막 사진처럼 길에 과일을 깔고 판매하는 걸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한 건 '드냐'라고 멜론과 참외의 중간형태인 과일이다. 럭비공 처럼 생겼고 사진에서 수박 왼쪽에 있는걸 볼 수 있다.

국내에서도 판매가 된적이 있는데 관련 병충해로 인해 현재는 수입금지 품목. 

수박 역시 비를 맞지 않아 달고 맛있다. 게다가 그 가격도 상당히 저렴하다.

내가 살때 기준으로보면, 수박이 한통에 1불 정도, 드냐 역시 2불 내외였다.

체리는 1키로에 1불 정도로 굉장히 저렴했다. 베제테리안은 살기 좋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고기를 좋아하는데 양고기는 비싼편이고, 닭고기가 그나마 싼편이었다.

소고기는 한국보단 싸지만 딱히 싼편은 아니고, 돼지고기는 정말 비싸다.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는 인구가 별로 없기 때문.

삼겹살의 경우 일반적인 정육점에선 찾을 수 없고 한인상점에 가야 했다. 












현재는 우즈벡이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는 아니지만, 과거 우즈벡은 러시아제국 및 소련의 중앙아시아 지배 거점이었다.

또한 그 이전부터 실크로드의 중심지로 대도시가 형성된 곳은 거의 우즈벡지역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엔 우즈벡 특히 타슈켄트 지역이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가장 경제적으로 부유했다.

(현재는 카자흐스탄이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며, 알마티에 비해 초라해졌다)


그래서 타슈켄트엔 중앙아시아 최초로 지하철이 생겼고, 카자흐스탄이 알마티에 지하철을 짓기 전까진 중앙아 유일의 지하철이었다.

알마티는 아직도 1개노선이지만, 우즈벡은 3개 노선으로 지하철이 상당히 편리한 교통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소련시대 지하철의 특징이라면, 역 내부를 화려하게 짓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마다 테마가 있어 전부 다른 인터레어로 되어있다.


우즈벡은 지하철 내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찍으려면 몰래 찍어야 한다.

문제는 우즈벡 경찰은 부패하기로 유명하고... 외국인이면 표적이 될 수 있다.

심지어 테러를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지하철 개찰구에 경찰이 지키고 있으며 짐이 크거나 가방이 크면 열어서 검사한다.

난 그냥 열어서 보여주기만 했지만, 종종 관광객들에겐 있는 짐을 모두 꺼내보이게 한다(돈을 주면 넘어가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멋있다고 생각했던 역은 코스모나프틀라르(우주비행사들). 

한국 대사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역인데, 소련시대 우주비행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구현해 놓았다.

(분명 찍은 사진이 있을건데 찾지 못하고 있다)














우즈벡은 수공예로 유명하다. 특히 나무로 만드는 그릇, 조각상, 함 같은 것들이 유명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가격은 꽤 비싼편.

우즈벡 부잣집은 화려한 문양으로 조각한 나무기둥을 사용한다. 그래서 집을 짓는데 많은 돈이 들어간다고...


세번째 사진에서 중앙에 있는 작은 모스크가 가장 오래된 코란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코란으로 7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 호텔은 상당히 좋은 위치에 있다. 시설은 소련시대 호텔이라 별로지만 위치하나는 정말 좋다.

쩬뜨르 우즈베키스탄(우즈벡의 중심)이라 불리는 아무르 동상에서 가까우며, 브로드웨이라 불리는 구 중심가와도 가깝다.

현재는 쇠락했지만, 터키인들이 추방당하기 전까진 가장 융성했던 상점가였다고 한다. 지금도 사람들도 꽤 많고 예술가들이 많다.

또한 걸어서 멀지 않은 곳에 제정 러시아의 공작이 살던 궁궐이 있다. 














한류가 있긴 있구나 했던 사례 한일자동펌프!!

저기서 일하셨던건지 어디서 산건지 보자마자 웃겨서 사진을 찍었었다.


우즈벡은 한국기업이 많이 진출했기에 한국상점이 많다. 한식당도 상당히 많다.

내 우즈벡 최고의 맛집은 도가니탕 전문점이었다.

하여간 한국상점도 많고 한국음식점도 많아서 가서 향수병 날 일은 없다.

참고로 한국에서 진출한 봉사단도 많아서 한국 사람도 상당히 많다. 


중앙아시아에서 경찰이 제일 위험할 정도로 치안이 안정되어 있기도 하고 한국에 호의적이다.

제일 아래 서울 공원 같은 경우에도 인기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내가 교환학생할땐 없었는데, 이후에 다시 찾아갔을때 생겼더라. 

내가 다녔던 학교 주변에 있는건데 인기가 좋다고 한다. 한류가 있긴 있나보다.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그렇던데, 분수가 정말 많다.

처음엔 분수를 보면 사진을 찍지만 나중엔 또 분수구나 하는 생각만 하고 넘어가게 될 정도로 분수가 많다.

아이러니한건 우즈벡은 물이 부족해 다른 국가와 분쟁일 일어날 정도로 물이 부족한 국가인데 타슈켄트는 물을 펑펑 쓴다.

이외에도 녹지엔 전부 스프링쿨러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녹지를 유지하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를 위해 상당히 많은 물을 사용하고 있다.













우즈벡이 더디지만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단 것을 느낀게 바로 대형 상점의 등장이었다.

내가 갔을 때만 해도 대형 상점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으로 치면 하모니 마트 정도의 작은 마트 체인이 있긴 했지만 한국처럼 크진 않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복합 쇼핑몰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있어도 그 내부가 사실 조금은 초라했다.

첫 사진이 내가 살때 생겼던 대형 쇼핑몰 중 하나인 메가플레닛이다.

슈퍼마켓이 아닌 기뻬르 마켓(기가마켓)이라 했지만 한국보단 작았다. 그래도 우즈벡 치곤 상당히 큰 편에 속했다.

하지만 복합쇼핑몰 치고 다른 매장들은 단순한 개인매장들로 구경할게 많진 않았다. 그래도 최상층에 위치한 푸드코트는 나쁘지 않았다.


내가 두번째 방문했을 때 생겨난 곳이 밑에 있는 사마르칸트 다르보자(사마르칸트의 큰문).

여기도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커졌단걸 알 수 있었다.

이외에도 내가 다니던 학교 앞에도 저런 쇼핑몰이 생겨났으며, 계속해서 쇼핑몰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전통시장이 사라지고 그 위에 대형마트를 짓는 등 변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더불어 저 콜라... 리벨라 콜라. 우즈벡엔 코카콜라 공장이 있긴 했다. 근데 뭔가 분쟁이 일어나면서 생산이 중단되고 나온게 바로 저것이다.

저런걸 보면 우즈벡도 꾸준히 발전하고 공업화 상업화가 일어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코카콜라보단 맛 없다. 











이건 내 개인적인 추억 사진들.

내가 다녔던 학교.

내가 살았던 아파트


저때가 종종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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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은 국토교통과 관련된 연구를 관리 감독하는 공공기관이다.

안양에 위치해 있으며, 평촌역 부근으로 접근성이 상당히 좋다.

국토교통과 관련된 기관이다보니 기관의 규모가 상당히 큰편인 것 같다.


근무기간은 5개월 이내로 8월부터 12월까지 근무할 것으로 생각된다. 

R&D 업무지원으로 R&D 개발과 관련된 업무를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R&D 업무 내에도 여러가지가 있을 테니 R&D 관리 업무가 어떤 것들을 하는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공공기관 특성상, 정확한 상세일정을 공개하고 거기에 맞춰 진행되었다.

메일과 문자로 합격통보가 온다. 상당히 친절한 편. 


채용 공지에 나온바에 따른 면접 평가 사항은 아래와 같다.


1. 기본소양 및 자질 20점

2. 의사발표의 정확성과 논리성 30점

3. 조직화합 및 협동심, 성실성 및 첨령성 20점

4. 협상 및 위기관리 능력 30점 


일반적인 공공기관 체험인턴 면접과 크게 다를바 없었으며, 다대다 면접으로 진행되었다.

면접관 5명, 면접자 4명이었다. 경쟁율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공지에 따르면 5배수 이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4명씩 면접을 봤고 약 4~5개조 였으므로 4~5배수로 추측된다. 


면접질문


1. 업무를 진행하면서 지켜야 하는 원칙에 반하는 행동을 해야하는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공통)


2. 한정된 자원으로 일해야 하는 경우 어떻게 처리 하겠는가?? (공통)


3. 화합과 상생을 위한 본인의 태도는 무엇인지 경험을 위주로 설명하라 (공통)


4 입사 후 맡은 업무가 전공과 맞지 않게 주어졌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공통)


5. 진흥원에 대해 어떻게 조사를 했는가??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 알고 있는가?? (공통)



모든 질문은 공통질문이었으며, 예상했던 자기소개나 지원동기는 나오지 않았다. 또한 자주 들었던 상사와의 트러블에 대한 질문도 없었다.

다른 공공기관과 질문은 조금 달랐지만, 큰 틀에선 예상 가능했던 질문이라 생각된다. 보통 자기소개서 문항으로 많이 본 질문들이다.

질문에 대해 대부분 마트에서 인턴한 사례로 들었는데, 몇개는 다른 것으로 할걸 하고 후회가 됐다.

갑작스런 질문에 대해 대답하는게 여전히 어렵다. 


면접비는 당일 현금으로 지급되었고, 3만원이었다. 



P.s 1

다른 것보다 위치가 가까워서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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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있었던 경매사 2차 시험의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높은 점수로 합격! 






2차 시험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만 알고 있다면 정말 쉽게 합격할 수 있는 시험이다.

실제로 2차 시험 합격률은 전체 87.3%, 수산은 97.87%로 대부분 합격하였다.

화훼나 양곡은 응시자는 적었지만 100% 합격을 했다. 

축산과 청과가 각각 77.27%, 85.02%로 많이 저조했다.


과거에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별도의 소양교육이 있어, 소양 교육 이후 자격증을 발급했지만, 현재는 폐지되어 바로 발급받을 수 있다.

발급 받고자 하는 경우, 별도의 신청서류와 신분증 사본, 그리고 증명사진을 첨부하고 발급비 4000원을 입금하면 된다.






경매사 시험 결과 흥미로은 사실은 생각보다 10대~20대 응시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40~60대보다 많았다.

그리고 대다수는 30대로 실무자들이 많이 취득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다수가 남자로 여성의 비율은 9.56%에 불과했다.


올해 경매사는 끝이났다.

하지만 바뀐점이 있다면, 청과와 수산의 경우 응시자가 많아 매년 시험을 치루게 됐다는 것이다.

격년에 있었던 것보단 많이 좋아졌다.


2019년 청과와 수산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해선 추후 유튜브를 통해 2차 시험요령을 제작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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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애드센스가 6월 21일에 승인이 났으니, 등록하고 한달이 조금 지났다. 

구글 애드센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애드고시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고, 

대행 해주는 대신 수십만원의 돈을 받는 곳도 있더라.


근데 애드센스의 가장 중요한 점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유입되느냐이다.

즉, 돈주고 애드센스를 등록해놔도, 유입되는 사람이 적다면 큰 수익이 들어오지 않는다.

애드센스를 받지 못할정도로 컨텐츠가 부족하다면 사람들이 유입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므로.

그냥 꾸준히 글을 올리면서 기다리는게 낫다고 생각된다. 수십만원을 투자하는 경우 그 비용을 뽑아내기가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결국 구글 애드센스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유입되었고, 또 얼마나 많은 광고접속이 일어났느냐가 중요하다.

하루 50~200명 사이로 방문하는 내 블로그의 경우 애드센스를 통한 수익이 약 0.01~0.1 달러에 불과했다. 

6월 21일부터 30일까지 0.95불, 그리고 7월 21일까지 2.62불. 한달 기준 약 3000원을 벌었다.


100명정도가 0.1불정도라 가정했을 때 1,000명이면 1달러 10,000명이면 10달러가 맞지만 실제론 사람이 늘어날수록 그 금액이 훨씬 많이 늘어난다고 한다.

만명 정도가 접속하는 시점부터 하루 20~30불 정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즉 애드센스를 통해 용돈벌이를 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려면, 하루 약 1만명이 접속하고 수백명이 광고를 클릭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답은 역시 꾸준한 블로그 운영과 컨텐츠 업로드를 통해 사람들의 유입을 이끌어내고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겠다.




P.S 1

광고가 좋은 위치에 나왔으면 좋겠는데 HTML을 조정해도 자꾸 글 중간에 나타난다.

상단 하단 그리고 사이드에 나타나게 하고싶은데 마음처럼 안된다. 


P.S 2

유의미한 변화가 생겼다고 생각 될 때마다 이렇게 구글 애드센스 관련된 글을 업로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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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뜨고 있는 여행지 블라디보스톡. 문구가 한국에서 가까운 유럽이라 했는데. 유럽적인가? 난 잘 모르겠다. 다만 러시아적인 색체는 아주 짙다. 

블라디보스톡은 일명 러시아의 부동항. 하지만 한 겨울에는 얼어 붙게 되고, 쇄빙선이 없으면 진입이 힘들다고 한다.

학회가 있어 마침 짧게나마 블라디보스톡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는 지금처럼 여행지로 부상하지 않았던 2014년. 


블라디보스톡은 소련의 붕괴 이전까지는 군사항구로써 민간에는 개방되지 않던 지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블라디보스톡에는 많은 해군들을 볼 수 있으며 전함을 볼 수 있다.


소련에게 그리고 소련이었던 국가들에게 가장 큰 기념일 중 하나는 'День Победы' 승전기념일이다.  

독일 나치 파시스트의 침공으로부터 조국을 수호하고, 독일을 항복시킨 5월 9일이며, 가장 성대하게 기념일을 치른다.

그리고 소련이 붕괴한 지금도 거의 모든 소련 독립국들은 승전을 기념하고 있다. 

또한 소련 전지역 곳곳에 2번째 사진과 같은 기념물을 제작하여 그 승리를 기린다(이외에 전쟁 상이용사를 추모하는 꺼지지 않는 불이 있다)











블라디보스톡은 러시아 극동에 위치하여 있지만, 러시아적 느낌은 물씬 풍기기는 한다.

어딘가 유럽스러우면서도 유럽답지 않은 거리가 그것.

전통적으로 러시아는 유럽이면서 유럽이 아닌 그런 이미지.


참고로 러시아인들은 소시지를 정말 좋아한다. 'Колбаса' 깔바싸 혹은 'Сосиски' 싸시스키라 부른다. 

깔바싸와 싸시스키는 다른 종류이다. 개인적으론 깔바싸를 더 좋아했다. 마지막 사진 중앙에 비치되어 있는 것들이 깔바싸.

소시지를 말린 형태부터 그냥 소시지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문제는 껍질이 있어서 벗겨서 먹어야 한다는 것.

모르고 먹어도 무방하긴한데 난 벗겨서 먹었다. 그리고 러시아인들이 좋아하는 소시지는 'Докторская' 독또르스까야 이다.

상단에 있는 두꺼운 햄들이 독또르스까야. 먹어봤는데 크게 다른점은 느끼지 못했다. 

러시아에 가서 에어비엔비 등으로 조리 도구가 있는 곳에서 자게 된다면 러시아 소시지와 빵을 먹는 것을 추천한다.












블라디보스톡이 위치한 Приморский край 쁘리모르스끼 끄라이, 우리에겐 연해주로 익순한 이곳은 아무르 호랑이가 유명하다.

흔히 시베리아 호랑이라 불리는 애들이 주의 마스코트.

그래서 도시를 다니다보면 호랑이 동상을 자주 접할 수 있다. 호랑이 이빠를 얼마나 만졌는지 ... 이빨만 멘들멘들.

(저거 만지면 아들낳나? 왜 만지는거지...?)


소련은 분수와 동상을 사랑한다. 이유는 몰라도 소련이었던 국가에서 일정규모 이상인 도시를 가게 되면 항상 동상과 분수를 만날 수 있다.

동상은 체제 선전과 애국심을 위해서라지만 분수는 왜인지 모르겠다.










블라디보스톡에는 도심 이외에도 여러 섬이 있다. 그 중 한 곳은 과거에 군사용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이렇게 지면에 포를 설치하고,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고 한다. 가상의 적은 가까운 일본부터 미국이었으리라.

포의 시대가 끝난 지금은 관광자원으로 그 내부를 공개하고 있다.

저렇게 지하 깊숙히 파서 포를 운영했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톡의 현수교가 보이는 위치. 유명한 사진촬영 포인트라고 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야경을 봤으면 좋으련만 그럴 시간은 없었다. 

자물쇠를 걸고 서로의 사랑을 간직하려 하는건 어느나라에서나 유행하는가 보다.


그리고 푸니클료르...? 저렇게 기울어진 상태로 내려가는 모노레일이 있다.

전세계에 몇 없다던데. 모르겠다. 

 

그리고 내려와서 보니 동상이 있었는데 아마 푸시킨의 동상이 아닐까 싶다.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러시아 다운 러시아어를 만든 에티오피아계 러시아인.

그는 어느정도 흑인의 특성(꼽슬머리 등)을 타고났지만 이를 창피해하진 않았다는 듯.


지금의 러시아어는 푸시킨으로부터 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한국에선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가 유명하지만, 러시아에선 푸시킨이 더 유명하고 인기가 많다. 


한국에선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라는 시로 유명하다.

하지만 러시아에선 그렇게까지 유명하진 않은 시.

힘들어도 버티란 의미 때문에 노오력을 숭배하는 헬조선에서 인기가 많은게 아닐까?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사랑하는 우리에게 지금은 힘들어도 지나고 보면 괜찮다는 푸시킨의 시는 아주 아름답게 들렸을 것이다.










블라디보스톡 기차역.

마침 갔을 때 신병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을 볼 수 있었다.

애잔.. 참고로 러시아의 군생활은 한국 7080시대 군생활만큼 버라이어티 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주 잔인한 악폐습이 존재하며 사망하는 사례도 많다. 

자녀를 군대에 보낸 부모들은 혹여나 군대에서 죽진 않을까 눈물을 흘리며 기다린다고... 











마침 갔을때 'День Города во Владивостоке' 젠 고로다 바 블라디바스또까였다.

젠 고로다는 도시의 날로 소련시대의 전통이며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도시에서는 연례행사로 기념한다.

매년 7월 1일, 도시의 날을 기념하여 문화공연도 하고 저렇게 논다. 

왜 버블을 쏘는진 모르겠다만 재밌게들 놀더라.









러시아인 친구가 추천해줬던 까페.

신나본(Синнабон / Cinnabon) 저 디저트 먹어보면 분명 시나몬일거같은데 신나본이 이름이다.

뭘까... 맛은 괜찮다. 맛있게 먹고 나왔다.

러시아인 친구가 블라디보스톡에 가게되면 꼭 가라고 자기가 좋아하는 곳이라고 했는데 개인적으론 만족했다.












그리고 도시의 날 마지막을 장식하는 불꽃놀이. 꽤나 화려하게 불꽃놀이를 했다.

러시아하면 밤에 돌아다니기 굉장히 위험할 거 같은데. 생각보단 위험하지 않다.

러시아 하면 스킨헤드가 동양인을 보면 죽인다는 이미지가 상당히 남아있기 때문인데.

생각처럼 위험하진 않다. 다만 밤에 작은 대로를 다니진 말자. 이건 유럽에서도 통용되는 말.









러시아에 왔으니 당연히 보드카를 마셔야지.

먀코프 보드카. 러시아인 친구가 추천해줬다. 

자기들이 즐겨먹는 거라니까 먹었는데 깔끔하고 괜찮았다.

처음엔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클럽 꾸꾸(아마 뜻이 뻐꾸기)를 가려고 했는데

그냥 일반적인 술집에 왔다. 러시아친구가 일반적인 술집이라길래 왔는데 봉이 있고 여자분들이 봉을 잡고 춤을 추고 계셨다.

스트립클럽은 아닌데 오우야... 술마시며 눈호강 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걷기 괜찮은 거리. 블라디보스톡의 아르바트 거리. 따라 걸어내려가면 바다를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바다를 따라 걷다보면 아기 호냥이 동상도 볼 수 있다.


중간에 있는 사진은 그루지아 음식점에서 먹은건데. 친구가 데려간데라 어딘진 기억안난다.

그루지아 음식 맛있긴 한데 양이 진짜 창....


블라디보스톡이 군사항구구나 싶을때가 바로 전함이 지나갈때다.

전함이 종종 지나다닌다.












블라디보스톡 여행하면 바로 해산물. 그 중에서도 킹크랩, 대게 그리고 대망의 곰새우다. 

곰새우는 베릴해협에서만 산다고 하는데. 그 양이 많지 않아 수출은 힘들다고 한다.

롯X마트 수산팀 MD인턴으로 있으면 이걸로 마지막 PPT할려했는데 수출금지 품목이라 해서 포기. 

그 맛도 상당히 좋고 기괴하게 생긴 껍질이 한번에 쏙쏙 발라져서 먹기도 편하다.

근데 지금은 전보다 가격이 상당히 올랐다는 것 같다.


러시아어가 가능하다면 저렇게 상점에서 사서, 옆에 있는 아무 음식점에 가서 삶아 달라 부탁하자.

레스토랑보다 훨씬 싸다. 


참고로 곰새우의 이름은 메드베지까 러시아어로 어찌쓰는진 까먹었다.

메드베드는 러시아어로 곰. 유명한 푸틴의 따까리 아니 총리 메드베데프는 성이 곰인 것. 굳이 한국식으로 하면 웅씨려나?


블라디보스톡은 한 중 일과 굉장히 가까히에 위치해 있어 한 중 일 공산품을 많이 판다.

라면부터 시작해서 카스 맥주 김까지...없는게 없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멀지 않은 도시 우수리스크. 한인이 많이 사는 곳으로, 한국 문화센터도 존재한다.

일제시대 한인들이 독립운동을 하던 지역이다. 하지만 나중에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하는 고통을 받게 된다.

이곳에 사는 한국인을 보통 고려인이라 부른다. 고려인분들이 한국에서도 잘 안배우는 춤을 배우고 계셨다.











연해주 지방은 일제시대 무장독립투쟁을 하던 지역이기에 많은 독립군들이 살던 지역이다.

하지만 스탈린은 소수민족 말살정책을 펼쳤고, 그로 인해 상당히 많은 독립군과 그의 가족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하게 된다.

많은 독립운동가가 희생된 곳이다. 하지만 소련이라는 이념으로 인해 우리에게 잊혀지게 되었다.












라즈돌노예 역. 한인들이 강제이주 당해 열차에 몸을 실어야 했던 역이다.

갑작스레 한인들을 라즈돌노예 역으로  강제 소집했으며, 짐 역시 최소화 시키며 모든 것을 빼앗긴체 그들은 중앙아시아로 보내졌다.

그리고 보내지는 도중 1/3 이상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는 한인들은 그러한 사실을 부모를 통해 들었다고 한다.

시대의 비극이다. 











블라디보스톡

여행을 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번쯤 기회가 있으면 가볼만은 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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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메니스탄은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란 별명이 있는 중앙아시아의 국가이다.

이슬람을 많이 믿는 국가답게 초승달이 국기에 그려져 있으며, 옆에 있는 문양은 투르크멘 지역에 있던 5개의 부족문양이라고 한다.

투르크멘 지역을 지배하던 가문들의 문양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투르크라는 이름답게 터키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투르크멘 사람말론 투르크어가 터키어와 상당히 유사해서 배우기도 금방 배우지만 서로의 언어로 말했을 때 어느정도는 이해가 간다고 한다.

인구의 대다수인 85%정도가 투르크멘인이며, 러시아인과 우즈벡인이 약 4~5% 정도 거주한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독재국가이다. 언론자유도 조사에서 북한과 함께 최하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여긴 언론의 자유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독재자에 대한 신격화가 상당하며, 이전 독재자가 죽자 지금 독재자도 똑같이 자신을 신격화 하고 있다.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운동처럼 이전 독재자에 대해 은근히 까는 분위기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독재... 아이러니.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 중 하나이며, 상당한 양의 가스가 매장되어 있어 이를 수출하여 중앙아시아에선 상당히 잘사는 편에 속한다.

사실 사람들에겐 아주 생소한 나라인데, 잠깐 인터넷에서 세계의 마경 중 하나로 투르크메니스탄이 나온적이 있다.

일명 '지옥의 문'이 그곳. 









이곳이 생기게 된 일화는 조금은 어이 없는다.

1971년 소련의 지질학자들이 투르크멘을 조사하던 중 가스가 새어 나오는 싱크홀을 발견했는데, 

가스로 인해 주변 생태계에 문제가 생길 것을 염려하여 가스를 없앨 생각으로 불을 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가스는 생각보다 상당히 많았고, 40년이 넘도록 타오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별명이 지옥의 문 혹은 꺼지지 않는 지옥불 이라고 한다.


나는 외교부와 동행한 것이기에 저쪽으로 가보진 못했지만, 의외로 많은 여행객들이 저 지옥불을 보러 찾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투르크메니스탄은 매년 입국하는 외국인이 2만명 내외에 불과한 곳이라 의외로 많다는 것이지 많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직항 항공편은 없다. 주로 터키나 두바이를 통해 경유해야 한다.










투르크메니스탄 입국장의 모습과 내가 참석했던 행사장의 모습.

처음부터 독재자(구르반굴리 베르디 무하메도프)의 사진이 크게 걸려있다.

다음 사진들에도 올라오겠지만, 상당히 자기애가 강한분이다.

내가 갔을 때는 이젠 이름보다 503으로 더 자주 불리는 그분이 탄핵 당하기 전이였다.











수도 아시하바드는 생각보다 깔끔하다.

건물들도 전부 하얀색 대리석으로 지으며, 차도 흰차만 있다.

이게 웃긴일인지 슬픈일인지... 독재자가 하얀 도시를 만들겠다며, 검은차량을 모조리 압류해버렸다.

건물도 무조건 하얀색으로만 짓도록 명령을 내려 싹 리모델링을 했다고 한다.











호텔이 굉장히 특이하게 생겼었는데 호텔은 찍어놓은 사진이 없다.

일디즈(Yyldyz)호텔, 투르크멘 어로 별을 뜻한다고 한다. 첫번째 사진은 인터넷을 검색해서 나온건데.

시 외곽에 혼자 저렇게 서있다. 기괴한 모습인데 내부는 상당히 좋다.

그리고 호텔에서 바라본 아시하바드의 야경. 중간에 큐브처럼 생긴건 직원에게 물어보니 예식장이라고 한다.

웨딩홀... 왜 저렇게 지었는지는 그들만 알겠지.











아시하바드의 호텔이 가장 좋았는데 하루만 있고 도시를 이동해야 했다. 

카스피해에 위치한 도시인 투르크멘바시에 가야했기 때문이다.

투르크멘바시는 투르크멘의 우두머리라는 뜻을 가진 곳으로, 전임 독재자가 자신을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몰래찍다가 스트랩이 같이 나왔는데, 국내선 비행기엔 독재자의 사진이 걸려있다.

정말 멈출줄 모르는 그분의 자기애. 웃긴건 창피한건 아는지, 내가 이걸 찍고 있자 스튜어디스가 와서 찍지 못하게 막았다.

문제를 일으키면 안되므로 알겠다고 사진은 지우겠다고 말하고는 내려야 했다.


재밌는건 관광은 거의 못들어오게 막으면서 관광특구가 존재한다.

아바자(Awaza) 관광특구인데, 화려하게 생긴 호텔들이 즐비해 있으나 관광객은 없다.

대체 뭔 뻘짓일까. 관광특구를 만들어서 관광객을 유입시키고 싶다면 비자부터 잘주면 될걸...
















호텔에서 카스피해를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바다 같았다. 모래사장과 갈매기 그리고 수평선까지. 근데 바다로 보기엔 애매하다고 한다.

누가 봐도 바다인데 말이다. 바다전망을 보면서 여름엔 내국인 관광객이라도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관광으로 오기 쉽다면 한 번 쯤은 여기서 사치를 즐기며 지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일 아래는 어딘진 몰라도 여러번 식사를 한 곳이었다. 골프클럽인거 같은데 현지에선 상당히 수준높은 시설이라 그런건지 저기서 여러번 밥을 먹었다.

실제로 밥도 맛있었다.











투르크멘바시 인근에 위치한 시장의 풍경. 여느 중앙아시아의 시장과 모습이 똑같다.

한가지 다른점이 있다면, 시장의 관리인이 와서 사진을 찍지말라며 제지한다.

인터넷에서 투르크메니스탄에 대해 찾다보면 사진을 찍다간 압류당하기도 한다는데 정말 압류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마트에는 레쓰비가 있어서 조금 반가웠다.

아쉬운점이 일정대로만 다니다보니 현지화폐를 본적도 없고 또 어디 가서 물건도 사고 구경도 하고 그럴 기회가 없었다.









다시 수도인 아시하바드로 돌아가는 공항...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우리 독자재.

어딜가나 사진이 걸려있다. 근데 찍으면 싫어한다. 대체 뭔 생각으로 걸어놓게 한거야?












마지막날 수도 아시하바드로 돌아오고 나서 일정이 비어서 이곳 저곳 관광을 할 수 있었는데 그 중 하나.

시내에 위치한 어느 공원인데 마침 결혼을 하는 행렬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예전에 깡통다는 것처럼 여긴 차를 예쁘게 꾸며놓는다.

정겨운 모습.













아시하바드 시내에 위치한 카페트 박물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유명한게 3가지 있는데 바로 카페트와 아할테케, 그리고 독재자이다.

정말 깨알같이 다시 한 번 등장해 주시는 독재자... 세계에서 가장 큰 카페트로 기네스에 등재된 카페트라고 한다.

거기에 굳이 당신 얼굴을 달아놓는건 무슨 이유입니까?

카페트 박물관 앞에는 상당히 큰 국기계양대가 있다. 정말 높다. 키르기스도 그렇고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높고 큰 국기계양대에 대해 욕심이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에 가면 말과 관련된 그림이 유독 보이는데, 한혈마(피 같은 땀을 흘리는 말)라 불리는 아할테케의 원산지가 투르크메니스탄이라 한다.

삼국지에 나오는 적토마도 여기서 온 말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고 한다.


보는 바와 같이 수도 아시하바드는 정말 깔끔하다.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란 별명과 다르게 상당히 수준높게 사는 편.

심지어 도로의 중앙선이나 차선이 LED를 매몰해 놓은 구간도 있다...!

거기에 공무원이 너무 많다보니, 시킬게 없어서 중요한 건물 앞에서 걸레로 아스팔트를 닦게한다.

아스팔트가 멘들멘들하다. 대체 무슨 생각일까 싶지만, 본인들은 만족하고 산다고... 









집에 가는 국제 공항에서 다시한번 만날 수 있었던 자기애가 강한 독재자.

정말... 한번 다녀오면 독재자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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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18년 7월 21일 물류관리사 시험이 있었다. 그리고 같은날 17시에 가답안이 공개되어, 가답안을 통해 합격 불합격을 미리 점쳐볼 수 있었다.

점수는 다행히도 평균 67.5점으로 합격!




물류관리사는 국도교통부가 주관하는 국가전문자격시험이다. 물류와 관련된 업무를 하고 싶은 경우 많이 취득하는 자격증이다.

물류 및 유통기업에서 우대해주는 자격증으로 전공과 관련없이 많은 구직자들이 취득하는 자격증이다.

CPIM(생산재고관리사)과 같은 SCM관련 해외 자격증을 취득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래도 1회당 30만원이라는 살인적인 비용으로 보통은 물류관리사를 취득한다.

심지어 30만원씩 5번이나 봐야한다. 거기에 영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부담감이 크다. 

이렇다 보니 보통 비용과 언어적 장벽을 못이기고 포기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CPIM이 더 우대받는 자격증이다.)



물류관리사는 총 5개의 과목을 시험보며 다른 국가시험처럼 평균 60점을 넘기고, 과락(40점 미만)이 없으면 합격이다.

문항은 과목별 40문항이며, 시험시간은 40분씩이다. 즉 1교시는 120분, 2교시는 80분이 주어진다.

계산문제가 많은 보관하역론에서 시간을 뺏기게 된다면, 가장 어려운 물류관련법규에서 시간이 모자랄 수 있다.

계산문제에 대비하여 계산기를 가져가는 것이 좋다.


각각 

물류관리론 / 화물운송론 / 국제물류론 (1교시)

보관하역론 / 물류관련법규 (2교시)

로 나뉜다. 


공부를 해보면 알 수 있지만 일단 분량이 엄청나게 많다. 난이도보다는 분량에 압도되어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 양 때문에 포기할까 하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게다가 거의 암기위주이기 때문에 상당히 고통스럽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전공자의 경우 한 달 정도면 쉽게 취득이 가능하고, 비전공자의 경우 2~3개월 정도 생각하는게 좋다는 글이 많다.

실제로 공부하면서 느낀게 외우고는 있지만 이게 왜이런지, 이게 뭔지 모르고 외우는 경우가 많았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사진을 봐도 모르거나 비슷해 보여서 조금 난해했다. 


개인적 생각에 각각 과목별 난이도를 보자면 

물류관련법규 >>>>>>>>>>>>>>>>>>>>> 국제물류론 > 보관하역론 > 화물운송론 >>> 물류관리론이었다.




성격이 게으른 탓에 신청해 놓고는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다. 경매사 시험 실기가 끝나고 해야지 해놓고선 면접이 있다는 핑계로 넘겼다.

그리고 시험이 2주 앞으로 다가왔을 때 비로소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일단 앞서 말했던 것처럼 물류관리사의 진정한 어려움은 내용이 아니라 방대한 양이다.

5개의 과목 각각 상당히 많은 양을 공부해야 하며, 하나하나 암기 중심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외우는 수 밖에 없다.

특히 물류관련법규는 암기의 끝판왕이다.


사시가 어렵단건 알지만 왜 어려운지는 감이 안왔는데, 이번에 물류관련법규를 공부하면서 알 수 있었다.

하여야한다 / 할 수 있다.

~~~부장관이 한다 / 시,도지사가 한다 / 시군구청장이 한다.

허가 / 인가 / 신고 / 등록 / 면허 

등등 .... 읽으면 알겠는데 문제를 풀면 아리송 해서 정말 끝까지 과락이 나올까 마음 졸여야 했다.


첫 6일 간 위기감을 느끼면서도 설렁설렁 공부해서 진도도 안나갔고, 꾸역꾸역 읽는둥 마는둥 하며 겨우 1회독을 마쳤다.

1회독을 했으니 2012년 기출문제를 풀면 어느정도 점수가 나오겠지 하고 풀었는데 평균 51점이 나왔다. 심지어 찍어서 맞춘게 많았다.

인정할 수 없어 2013년 기출문제를 풀었으나 평균 48점. 더 처참한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인정하기로 하고, 기출문제중 틀렸던 것들 중심으로 다시 1회독을 하였다. 

기존에 한번 읽었기에 처음보다 빨랐고 이틀만에 다시 1회독을 마치고 기출문제를 풀었다.

계속 기출문제를 풀고 모자란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시 공부했다.

근데.... 시험 전날까지도 50점 후반 ~ 60점 초반 점수가 나왔고 반쯤 포기하고 열심히 공부한거 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험장에 갔다.


벼락치기라도 해보겠다고 4일간 3~4시간을 자면서 공부하여 컨디션도 최악이었는데.

설상가상 계산기를 가져가지 않아, 보관하역론의 계산문제들을 손으로 풀어야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가장 어려운 물류관련법규는 시간이 모자랐다. 그리고 결과는 의외로 널널하게 합격할 수 있었다. 


기출문제를 꾸준히 풀었을 때 보관하역론의 점수가 상당히 처참했다.

계속해서 40~50점대가 나와서, 전략으로 물류관리론과 화물운송론을 중점으로 공부했다.

그리고 꾸준히 두 과목만 잘나오고 나머지 3개를 망쳐왔는데.

실제 시험에선 화물운송론과 보관하역론이 가장 점수가 높았다.

오히려 물류관리론은 국제물류론과 비슷한 점수를 받았다. 


물류관련법규를 풀면서, 솔직히 떨어질거라 생각했다. 읽어도 뭐가 답인지 모르겠는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과락이거나 겨우 40점을 넘기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로 52.5점으로 과락과는 꽤 거리가 있었다.

아무튼 합격이다! 발표는 2018년 8월 16일 목요일 오전 09시부터이지만, 점수로 볼때 큰 문제가 없다면 합격이다.



향후 물류관리사를 취득하고 싶어 제 블로그에 들어오신분께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라면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비 전공자라면 다른 분들 말처럼 두 달 정도 기간을 잡고 공부하세요.

정 시간이 안난다면 한 달은 하세요.

저 처럼 2주만에 끝내겠다고 마지막 4일간 하루에 3~4시간씩 자면서 하지마세요.



P.s 1

경매사 때도 이랬는데 사람은 바뀌는게 없는거 같다.

그때도 공부하고 공부하다가 자포자기하고 갔는데 60점을 넘겼다.

당연한 얘기지만 하나도 기억안난다.


P.s 2

근데 발표가 늦어서 코레일에 가산점으로 등록할 수 없다.

코레일 쓰려고 딴건데.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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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성공패키지는 구직자들의 능력을 높여 취직을 할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을 지원해주는 정부 사업이다.

이와 관련해서 한번 포스팅한적이 있다.


나 같은 경우, 3단계 구직 기간 중 인턴이 되면서, 취업성공패키지가 중단되었다.

한달 이내에 퇴사한 경우 다시 취업성공패키지 3단계로 변경이 가능하나, 2개월간 인턴을 한 나는 그대로 종료가 되었다.







취업성공수당이 존재하나, 이 경우에도 3개월 이상부터 지급되는데, 2개월간 인턴을 한 나로선 받을 수 없었다.

취업성공수당을 받기 위해선, 취업 후 같은 직장에서 3개월, 6개월, 12개월을 근무해야한다. 

구직지원금 역시 2개월차에 끝이나면서  총 3개월까지 할 수 있는데, 1개월치는 받을 수 없었다.



취업성공패키지는 재 신청이 가능한데, 기존에는 상당히 쉽게 가능했다.

1년 이내에 재참여가 가능했으며, 3개월 이상 취업한 경우엔 6개월만 지났어도 재참여가 가능했다.

3개월 미만인 취업자도 9개월이 지나면 재참여가 가능했지만, 2018년이 되면서 개정되었다.






미취업 또는 1년 미만 취창업의 경우 2년 6개월, 1년 이상 취창업의 경우 1년으로 변경되었다.

기존에는 상당히 쉽게 재참여가 가능했던 것과 다르게, 1년 미만의 취창업의 경우 2년 6개월이란 상당히 긴 시간이 부여됐다.

사실한 1회이상 참여한 경우 다시 참여가 불가능하다 보는게 맞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취업기준도 동일 사업장 1년 이상 근속이니, 까다로운편


올 하반기까지 안될 경우 다시 한 번 참여하여 내년 상반기까지 노려보려 했는데, 그건 사실상 불가능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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